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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2019년

다해 연중 제 24주일

F.Correa 2019. 9. 14. 08:51

오늘 복음은 회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개를 라틴어로 conversio라고 합니다. con은 영어의 무엇과 함께라는 의미의 전치사 with를 뜻하기도 하고, 완전한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versio의 원형은 versus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회전 혹은 돌아섬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치면, 회개라는 라틴어 단어는 완전히 돌아섬을 의미합니다.

 

상상을 해보면, 이 단어의 느낌은 자동차의 유턴 같은 느낌입니다. 유턴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반대로 가기 위해 차를 돌리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회개라는 라틴어 단어는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고, 하느님과 반대되는 방향, 죄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았다면, 그에게 회개는 이제 더 이상 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차가 유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장 먼저 지금까지 왔던 속도를 서서히 줄여서 완전히 멈춰야 합니다. 죄를 향해 나가고 있는 인간에게 브레이크는 성찰과 고해성사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을 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인간은 단호한 마음으로 앞으로는 죄에 떨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치 차가 지금까지의 진행 방향과 반대로 가지 위해 핸들을 완전히 트는 것처럼,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마치 차가 앞으로 서서히 전진하기 위해서 연료가 필요하듯이 성체 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인간에게서 찾는다면 그 답은 자기 만족입니다. 자기가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 왜 이러한 일을 우리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만족은 우리가 선행을 실천해야 하는 근본적인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이러한 행위의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지상에서의 우리 선행을 보시고, 영원한 생명을 선사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것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이기적인 인간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이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서만 우리는 우리가 선하게 살아갈 이유와 이타적으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세속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의 것으로 완전히 되돌렸을 때, 즉 하느님 때문에 우리가 회개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12년전 개봉된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밀양은 비밀의 볕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혹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다음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비밀의 볕이 영화에서 주는 하나의 상징이라는 점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전도연 씨는 이 영화를 통해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만큼, 이 영화는 내용 면이나 연기 면에서 모두 뛰어납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반그리스도교적 영화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주는 훌륭한 그리스도교적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신애는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돈이 많은 척을 합니다. 어느 날 신애는 그 어느 때처럼 집에 퇴근한 다음 아들을 찾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신애는 아들이 자신과 숨바꼭질을 하는 줄 알고 아이를 찾습니다. 이 때 낯선 이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 전화는 신애의 아들을 유괴했으니 돈을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신애는 아이를 되찾기 위해 정신없이 유괴범의 이야기를 다 들어줍니다. 하지만 신애는 유괴범이 원하는 금액만큼 주지 못했고, 결국 신애의 아들은 유괴범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신애는 아들의 죽음 이후 계속 가슴이 아파옵니다. 너무 아파 피아노 학원 앞 약국에 갑니다. 이전부터 계속 교회에 나오라는 권유하던 약사로부터 신애의 아픔은 마음이 아픈 것이라 그 어떤 약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교회에 한 번 나와 보라고 말합니다. 신애는 약사의 말에 교회를 한 번 찾아 갑니다. 그렇게 예배에 참석한 신애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신애는 그 길로 하느님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신애는 큰 결심을 합니다.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해주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신애는 떨리는 마음으로 유괴범을 만나러 교도소에 갑니다. 하지만 신애는 자신과의 예상과 다르게 교도소에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신애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이로부터 편안한 얼굴로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께서 죄 많은 자신을 용서해주셨으며, 자신이 회개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신애는 이 말에 큰 좌절과 하느님을 향한 분노가 끌어오릅니다. 그리고 신애는 아직 자신이 그를 용서해 주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먼저 용서해주었다고 소리치며, 하느님께서 자신이 그를 용서할 기회조차 빼앗아 가 버리셨다고 원망합니다.

 

유괴범의 고백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과연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이 하느님을 알게 되어 회개하였고, 용서받았다고 피해자 가족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철저히 고통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개하였다는 저 유괴범의 고백은 과연 정당하고 올바른 것인가? 과연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의미의 회개일까?

 

어느 누군가가 진심으로 회개하였다면, 그는 과거의 자기 죄를 미워하게 된 사람이고, 세상으로 향하는 자신의 시선을 하느님으로 되돌린 사람이며, 자기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곧 그는 하느님과 함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사랑이신 하느님을 품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자연스럽게 사랑이신 하느님을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사랑을 지녔기에 온유하며 겸손할 것입니다. 만약 유괴범이 정말로 하느님 때문에 회개했다면, 하느님 때문에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당당하게 자신이 회개하였음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진정한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느님을 체험할 것이며, 하느님의 위로가 그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주어진 변화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는 그 분 안에 살며, 그 분이 우리 안에 사시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하느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증거해야할 사명을 지녔습니다. 우리의 변화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돌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느님을 향하도록 합시다. 이러면 어느 누군가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하느님께 그리고 그리스도께 의탁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목표가 우리 눈 앞에 있습니다. 하느님께 늘 청하십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수많은 영적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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